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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무의식 속 내적 인격으로 의식 영역에 존재하는 한 사람의 생물학적 성과 반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A가 남자이면 아니마를, B가 여자이면 아니무스를 가지는거죠. 그런데 융은 이 아니무스와 아니마를 설명할 때 여성, 남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융이 살던 시대와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역할 페르소나를 염두에 두고 그 반대 방향에 있는 아니마,아니무스를 설명한 것이겠지만, 여성성과 남성성의 정의에 따라 젠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변화된 성역할에도 적용되는 아니마 아니무스

K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인격적으로는 많은 여성이 갖고 있는 특질(편의상 여성성)을 갖고 있다면, 그 남성의 아니마는 융이 말했던 전형적인 아니마 성향일까요? 실 사례들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K의 아니마는 좀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며 센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융의 아니마,아니무스 개념이 젠더 의식과 관련지었을 때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견입니다. 

한 예로 임신, 출산은 시대가 요청하는 역할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고대에도 일어났을 것이고 현대도 마찬가지이죠. 임신, 출산을 할 수 있는 여성의 기능은 유전자에 의해 정해져 타고나는 것이고, 사회가 요청해 생겨난 기능이라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육체를 가지고 의식영역에 태어나는데, 자웅동체가 아닌, 하나의 성만 선택되어 태어납니다. 따라서 어느 시대이든 시대가 요청하는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역할은 이 하나의 성에 기반해 형성되고 구분되어지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젠더문제로 오해받는 페르소나 강요 문제

결국 개인은 원하지 않으나 사회가 요구하기 때문에 한 성역할(페르소나)에 얽매어 사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억눌린 무의식의 저항에 사로잡혀 살게 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번엔 반대로 여성 남성으로 서로 다르게 태어난 유전적 형질을 완전히 무시하며 심리적 자웅동체의 삶을 지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의식에 억압되는 내용물만 다를 뿐 무의식에 저항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개성을 가진 여성, 남성을 존중하지 않음에서 오는 강요된 페르소나 문제입니다. 

태극 : 음과 양

아니마/아니무스와 같은 원형은 손에 잡히거나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페르소나는 그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관찰함으로 쉽게 알 수 있지만, 그가 그의 내면을 대하는 태도는 쉽게 알 수 없으니까요. 내가 나 자신의 내면을 대하는 태도, 아니마/아니무스 원형은 개인에게만 발견되는 무의식이 아니라 집단적 무의식에 속해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마/아니무스는 세상의 문화,한 개인의 개성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는 것이지 한 시대의 요구, 문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죠. 좀 더 이해를 돕기위해 아니마, 아니무스를 음과 양이라는 단어로 바꾼다면 부가적인 고민을 덜 수 있습니다. 아니마성향은 음의 성향, 아니무스 성향은 양의 성향으로 치환한다면 무의식 원형의 이해가 더 깊어질 것입니다.

뜬금없는 소리 같으나 암컷 고양이 수컷 고양이의 경우 성별에 따라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암컷 고양이는 임신, 출산의 주체로서 조심스럽고 어른스러우며 까다로운 반면, 수컷 고양이는 느긋하고 낙천적이며 친화적입니다. 이 경우도 음과 양으로 치환해 해석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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