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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비움으로 순환되는 만물의 관계

致虛恒也 守中篤也 (치허항야 수중독야) : 비움에 이르면 한결같으며, 중심을 지키면 관계가 도타워집니다. 의식이 무의식의 자리를 비워두면, 균형을 이루게되어 한결같은 상태가 됩니다. 그러면서도 자아가 중심을 잘 지키면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은 물론 의식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도타워지게됩니다. 결국 의식에서 발생하는 관계와 무의식과의 관계가 모두 한결같을 수 있는 것은 무의식의 자리를 비워두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萬物竝作 吾以觀復 (만물병작 오이관복) : 만물은 서로 어울려 작용하고, 나는 거기서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만물은 나 자신을 포함한 자연, 사람들,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 모두를 이릅니다. 노자는 만물이 서로 따로 떨어져있지 않고, 서로가 영향을 받으며 순환하는 것을 보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 대저 만물은 향풀처럼 얼기설기 왕성하게 자라다가도 결국 각자의 뿌리로 되돌아갑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만 태어나 자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물 모두가 특정한 하나의 상태에서 시작해 무르익어가고 점차 다른 상태로 변화하는 것 모두를 아울러 왕성하게 자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의 뿌리는 무의식이며, 여러 상태를 겪은 만물은 다시 무의식으로 환원됩니다.

 

무의식이 가진 생명회복의 힘

歸根曰靜 是謂復命 (귀근왈명 시위복명) 뿌리로 돌아가니 휴식이라 하고, 이를 일컬어 생명을 회복한다합니다. 뿌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시작지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고, 시작지점은 무의식을 말합니다. 의식에서 투사를 통해 좌충우돌하며 경험하고 성장했던 자아가 집단무의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비할 수 있으니, 휴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식에서 성장하는 동안 잠을 통해 생명력을 회복했던 것처럼, 무의식으로 돌아간 후에도 생명력을 회복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復命曰常 知常曰明 (복명왈상 지상왈명) 생명을 회복하는것을 영원하다 하고, 영원함을 아는 것을 밝다고 합니다. 의식에는 영원한 것이 없지만, 무의식의 모든 것들은 영원하며, 영원한 것 중에는 생명의 회복도 포함되어있고, 영원함을 아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무의식이 인식하기 쉽지 않기에 어두움으로 표현되지만, 본래 속성은 영원을 품고 있는 것으로 그 속성을 아는 것을 노자는 밝다고 표현합니다.

不知常 妄作凶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부지상 망작흉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영원함을 모르면 허망히 흉을 짓고, 알면 포용력이 생기고, 포용하면 공평하게 되고, 공평하면 왕에 이르고, 왕이면 하늘에 이르고, 하늘이면 도에 이르고, 도에 이르면 오래갈 것이고, 몸이 가라앉아도 위태롭지 않을 것입니다.

밝은 창에 드리워진 커튼
무의식으로 돌아감은 휴식이며 생명을 회복함이다

의식 속에 살면서도 무의식의 지식이 없으면 허망하게 된다는 표현으로 무의식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은 앞서 다루었듯이 가치판단이 없으며 어머니와 같은 포용력이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 무의식에 대해 알고 의식에서 살게 된다면 포용력, 공평함, 왕같음, 하늘같음, 도에 이름 이 모든 것들을 이루게 된다고 합니다. 무의식에 대한 지식은 의식의 삶을 오래가게 할 것이고, 몸이 땅에 묻히거나, 낮아진다해도 위태로워지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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