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여느 유아들처럼 본능을 따라 열심히 사는 유아 A가 있습니다. A가 7살 무렵 이젠 때가 되었다 싶어 삶의 주도권을 가지려는데 '미운 7살'이란 소리를 듣게되고 전에 없는 방해를 받게됩니다. 유아 A 입장에서 주요 방해꾼은 잘 알지도 못하는 부모들입니다. A의 경험적 근거를 찾아보죠. 1~6살 사이의 사회생활이 어설픈 풋내기들에 비하면 A는 베테랑 유치원생으로서 한 교육기관의 졸업을 앞둔 어엿한 졸업반입니다.

A에게 또다른 내적 근거가 있습니다. 1~6살 사이에 A가 내면에 이룩해왔던 것을 살펴보면 양육자들에게서 배워온 어머니상, 아버지상이 포함되어 있고, 이것들은 A 본인이 누군가의 어머니이거나 아버지가 아니기에 무의식에 간직되어있습니다. 간직되었던 부모상은 부모 그림그리기, 또래 역할 놀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외부로 투사되고, 이렇게 투사되면서 무의식에 들어있어 A도 잘 몰랐던 내적 부모상을 표현해보고, 나름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거듭하다보면 실제 자신의 부모가 아닌 자기 내면만의 부모상도 만들 기회를 갖게 되고, 그에 비추어 자신의 부모를 판단할 근거가 생깁니다. A는 내면의 내적 부모상을 의식에 존재하는 부모에게 투사할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이제 방해꾼들이 '저기 미운 7살 간다'고 외칠 일만 남았군요. A는 성인이 될때 까지 '미운 7살'과 같은 시기를 여러차례 겪습니다. 청소년기를 맞아 극을 이루게 되고, 미운7살 A에게 영향력있는 방해꾼이었던 그들은 청소년 A의 강렬한 에너지에 눌려 쉽게 방해도 못하게 됩니다.

 

내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투사

투사란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외부의 존재들에 빔프로젝트를 쏘아 한 겹의 영상을 덧붙여, 남의 것인 양 보는 것입니다. A가 B를 좋아하는데, 그 마음이 억눌려져 모르고, 앞의 친구가 B를 좋아한다고 말하는거죠. 삶의 각 시기에 맞는 투사가 없었다면 A의 내적 성장도 어려울 것이고, 이 때 일어난 모든 사건들은 내적 성장을 위해 좋은 기회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이 투사되는 것은 아니지만, 투사된 후에는 그 대략적 무의식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격렬하게 싫은 대상이 나타났을 때, 아주 강하게 집착해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됐는데 그 이유도 잘 모를 때, 밑도 끝도 없는 호감이 느껴질 때. 모두 투사라는 이름의 기회입니다.

사람의 머리 속에 영사기가 들어있고 밖을 향해 영상을 쏘고 있는 사진
내 안의 것을 남에게 상영하는 투사

 

청소년기를 거쳐 본능이 많이 눌려진 성인기에 이르면 A가 저런 투사를 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게 될 수도 있고, 많은 경우 A도 모르게 되죠. 알아야 파악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데, 알 수 없다는 것이 비극입니다.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 '너 자신을 알라' 이 말, '네가 매사에 투사하고 있다는걸 알고, 투사로부터 자유로워져라'는 말로 바꿔도 될 듯합니다.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